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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여행이야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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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네에서 앉아서 보던 풍경

'언젠가 꼭 한 번은 써야지'했던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시리즈. 기억에서 더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본다.

김영하도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말했던 '이방인에 대한 환영, 호의'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자, 여행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감정임은 부인할 수 없다.

 

1. 베트남_무이네_어부아저씨네

무이네 숙소에서 식당가가 모여 있는 도심까지 꽤나 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옆에 바다가 보여 항상 걸어 다녔다. 그날도 어김없이 혼자 길을 걷다가 노을이 예뻐서, 한 식당 뒤편의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무이네 어부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들이 잘 보였다. 

 

그 뒤, 아주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다가와서 근처에서 놀길래 인사를 했다. 5~6살도 안 되어 보였는데, 정말 낯을 하나도 가리지 않는 아이였던지 바로 나한테 다가왔다. 그래서 거의 품에 안고 놀아주고 있었는데, 곧 어부아저씨와 어머니가 오시더니 노는 걸 좀 더 내버려 두다가, 저녁시간인 듯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내 옷자락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어떻게 달래 보려고 했지만 아이는 내가 썩 맘에 들었는지 고집불통이었고, 차마 그 손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어머니도 곤란, 나도 곤란한 기색으로 셋이 한참을 걸었다. '이러다 얘네 집에서 저녁 먹는 건가'할 때쯤 결국 어머니가 어떻게 저떻게 잘 데리고 가셨다.. 아이는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울었나, 기억이 희미하다.

 

워낙 낯도 안 가리고 나를 잘 따라 귀여웠던 아이라, 다음 날 똑같은 식당을 지나면서 아이가 있는지 찾아봤다. 안타깝게도 그 여자아이는 없었는데, 그 여자아이의 가족이 있었다. 가업이 어업인지, 가족이 다 같이 식당 옆의 공터에 앉아 그물을 만지고 있었다. 어제 잠깐 마주쳤던 아이의 아버지, 즉 어부아저씨가 날 알아보고는 불렀다. 나도 굉장히 반갑게 인사했다. 분명 그 가족은 베트남어로 말을 하고, 나는 영어로 말했는데 희한하게도 의사소통이 되었다. 집안의 막내딸이 날 굉장히 마음에 들어해서일까, 가족들도 내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심지어 어부아저씨는 자기 아들을 가리키더니, 얘 어떻냐고 시집오라고 얘기까지 하셨다(분명 베트남어로 말했는데 다 알아들었다ㅋㅋㅋㅋ) 아무튼 어부아저씨, 막내딸을 비롯해 어부 가족의 나를 향한 호의는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그다음 날, 무이네의 마지막 날이라 아저씨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식당 옆에서 보이지가 않았다. 너무 아쉬워서 아저씨가 일한다던 슈퍼마켓을 한 세 번쯤 지나쳤다. (이쯤 되면 대체 어떻게 소통해서 이런 정보까지 알았는지 신기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슈퍼마켓에서도 아저씨를 결국 찾지 못해서, 미리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하는 굉장히 큰 아쉬움과 함께 무이네를 떠난 기억이 있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식당 옆에 앉아서 나를 마치 자기 나라 사람인 양 환대해주던 어부 아저씨의 가족들의 어렴풋한 모습뿐이다. 결론은, 여행 다닐 땐 사진을 부지런히 찍자.

 

2. 러시아_알혼섬_경찰아저씨

알혼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 시간이 새벽이라, 미리 밤에 기차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내렸는데 러시아에서 택시를 타는 것은 언제나 무서운 경험이기 때문에 상당히 멍한 상태였다. 그 상태로 기차역에 도착해 '자 어디로 가야 하지'라고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먼저' 다가오더니, 자기 핸드폰의 구글 번역기를 켜서 '도움이 필요하니?'를 영어로 보여줬다. 아니, 불곰국의 경찰이 이렇게 친절할 일인가. 감동스러운 기색을 숨기며, 그 경찰의 도움을 받아 승차하는 곳의 위치를 알았다.

 

하지만 승차하는 시간까지 한참이 남았기에 새벽을 보낼 공간을 찾아 앉았다. 공항의 라운지 같은, 나 같은 새벽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에, 거의 새벽 내내 잠을 못 자고 뜬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구글 번역기로 도움을 준 그 경찰이 새벽 내내 순찰하면서 내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포착할 수 있었다. 물론 김칫국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위험 가능성이 높은 '어린, 동양인, 여자 관광객 1'의 안위를 끊임없이 확인해 주는 듯한 그 모습에 또다시 '세상은 참 따뜻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3. 호주_케언즈_다이빙 강사들

케언즈에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투어를 진행하던 업체의 다이빙 강사들. 로컬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에피소드다. (그들에겐 30%쯤 영업하는 마인드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게 즐거운 기억을 남겨준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새벽부터 접수처에 가서 바우처를 실제 배의 티켓으로 바꾸어야 한다.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기에 꽤나 기분이 좋았다. 모든 동양인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니하오를 내뱉는다. '아시아인에도 여러 국가가 있는 걸 알고, 내가 한국인인걸 바로 꿰뚫어 보다니, 신기한 사람이군' 하는 첫인상을 주던 유쾌하고 잘생긴 미중년 아저씨. 이 배의 선장급(?)이자 스쿠버 다이빙 강사였는데, 굉장한 디테일과 함께하는 '나는 부산사람이다'라는 농담에 정말 속아 넘어갔다. 그 옆에 있던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던 스쿠버 다이빙 강사는 북한에서 왔다길래, 그때서야 그 사람들이 농담하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까 둘 다 한국과 한국 영화를 꽤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하지 않기로 해서, 결국 이들의 손님은 되지 못했는데 대화는 엄청 많이 했다. 덕분에 나는 내적 친밀감이 엄청 상승했다. 선장 아저씨와는 부산행과 기생충 얘기를 엄청 했다. 젊은 친구는 내가 스노클링하고 나서 이마에 자국이 진하게 생긴 걸 보더니 엄청 놀려댔다. '바보야'라는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호주 사람한테 바보야 라는 말로 놀림당하다니 얼마나 황당하고 웃겼는지 모른다.

 

마지막에 하선을 하는데, 둘은 당연히 손님들을 배웅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내 차례가 되자 '야 너 오늘이 생일이지!!'며 물었다. 그 날은 진짜 내 생일이었다. 내 투어 신청서를 보고, 이름을 보고(유일한 한국인 손님이었다) 내 생일임을 발견했나 싶었다. '맞아!! 생일이야!!' 그게 또 귀엽고 고마워 한참을 기분 좋게 웃었다. 마지막에 허그와 함께 생일 축하를 받았는데, 타지에서 예상 못하고 받아서 그런가 그 순간도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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